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테란트 공화국/주민과 문화 (문단 편집) ==== 기형적 성비에 기인한 가정관의 변화 ==== 미테란트 공화국은 약 300년에 걸쳐 강제적으로 여초상태를 유지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인류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구조랄 수 있는 부계 혈통에 기반을 두는 가부장제를 실행할 수 없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 현재의 미테란트 공화국에서는 실질적으로 가부장적 가족구조가 성립하지 못한다. 이런 문화는 미테란트 전반에 걸쳐 귀족층을 제외한 평민층의 성씨 사용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고 있던 시점에서 국체를 잃은 데 이어, 시민계급의 등장과 성씨 지칭이 본격화되던 시점에 [[광역성비조절마법]]의 폐해로 남성 인구의 급감이 발생한 탓에 성립되었다. 사실 남성 인구의 급감 이전에도 미테란트 문화권은 전반적으로 모계가 가정내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매우 높은 편이었다.[* 미테란트 문화권은 비록 수적으로는 소수지만 문화 및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상대적으로 강대한 소수인종인 엘프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가족 내에서의 일방적인 지배구조가 성립하지 않는 경향이 컸고 가사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을 포함한 대외활동에서도 성별에 의한 차별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기본적인 가족구조는 가부장제에 가까웠고, 성씨 역시 부계와 모계의 것이 병행 사용되었으며, 업무 부담도 존재하여 전사 계급은 관습적으로 남성이 맡아 왔다.] 그런 상태에서 남성층이 빠르게 소멸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주도권이 부득이하게 완전히 여성의 손에 들어가면서 가부장적 가정구조를 구축할 이유는 물론이고 수단조차 없다시피 하게 되자[* 기본적으로 혈통에 의한 가문 구성은 재산의 세습과 직결되어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성씨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것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 특히 부계 혈통이 재산 세급의 근거로 작용해 왔던 데에는 이런 저런 요인이 공존하기 대문에 딱히 무엇이 현대적인 가부장제의 등장 원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속할 재산이 잇는 계급'에서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 이외에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자연스레 모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족구조가 형성되었다. 또한 지배국의 식민지배로 형성된 착취구조는 부득이하게 미테란트의 노동생산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미테란트 사회 전반을 산업화 구조에 알맞는 형식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미테란트 문화권은 대륙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농경 중심의 대가족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및 인적 커뮤니티 내부에서 제공하는 비교적 충실한 관습적 사회보장 시스템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핵가족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의 사회진출연령을 크게 앞당기는 부수적 효과도 불렀다. 이런 환경은 결국 가문 승계 및 이에 수반하는 재산 상속의 문재에서 남성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사회적 입지에서만이 아니라 성문화에서 까지도 남성이 소극적인 입장에, 여성이 적극적인 입장에 서게 되는 결과를 불렀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남성의 사회적 지위는 급락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남성 없이는 국민 자체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기형적 성비, 그리고 식민지배 시점에서 확실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각종 정치 · 경제 · 문화적 사상기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적어도 여성에 의한 남성의 일방적 비하만은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 세계의 18세기에 해당하는 대륙력 19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현재의 미테란트 문화권 가족구성방식이 확립되었다. 기본적으로 가문의 승계는 모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일부 귀족가문을 제외하고 성씨는 중시되지 않으며 모친의 이름을 성씨로 사용하거나 아예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이 기간동안, 남성이 사회적 지위는 일반적으로 절대강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에게 일단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받았다. 그럼에도 상대적인 약자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재산 문제가 심각하여 최소한 노후 생활에서는, 일부 경우 청 · 장년기에도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고 경제력 역시 우세한 여성 또는 사회보장제도에 의존[* 특히 식민지배자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전사 계급인 남성의 사회적 약체화를 반길만한 이유가 많았기에 적극적으로 이런 상황을 조장했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대륙력 19세기를 전후해서 남성의 전반적 나약화로 이어지면서 평균연령의 급감까지 이어져서, 한때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경제적 자립, 아니면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정신승리'''(…)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미테란트의 남성들은 결국 자포자기 아니면 스스로가 여성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자체 역량을 쌓아야만 한다는 현실 인식에 도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중 자포자기를 선택한 남성은 당연히 도태를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여성이 독립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배우자는 아니라도 자신의 자녀를 낳기 위해 무능하고 무기력한 남성을 선택하고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후까지 책임질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식민지배 국가 출신의 남성이라는, 권력 측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쟁자까지 존재하는 이상 남성들로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결국 남성들 역시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립도를 항시 유지하게 되었으며, 피나는 노력의 결과 사회의 몇몇 분야[* 의학과 예술 분야에서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특히 의학의 경우 인간 남성이 주축이되는 바람에 부작용으로 마법의학이 크게 위축되는 악영향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음악(성악 제외. 성악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강세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과 미술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의 영역이 되었다.]에서는 여성을 거의 구축하다시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신 전반적인 남성 유전자 풀의 위축은 더욱 심해져서 처음엔 5%대를 유지하던 성비가 결국 3% 이하로까지 감소했다. 특히 원래 문화적 측면에서 가부장적 요소가 비교적 강하게 남아있던 서부 3개 주 일대는 남성 인구 감소가 특히 심해서, 해당 지역은 현재까지도 성비가 1~2% 수준에 불과하고, 이 지역의 신생아는 주로 외지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고 있을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